Skin of Time - 우주적 신목(神木)으로서의 조각 / 윤진섭
 


  최태훈의 작품은 그 규모에 있어서나 제작 방법의 난이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철을 재료로 삼아 용접으로 제작되는 그의 작품은 곧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투여됨으로써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그라인더로 철판을 갈 때 발생하는 날카로운 소음과 용접을 할 때 튀는 시뻘건 불꽃, 그리고 철판을 두드릴 때 나는 둔탁한 굉음이 어우러져 마치 거대한 철공소를 연상케 한다.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철판들과 드넓은 작업실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완성된 작품들은 조각가 최태훈의 숨결을 발산하고 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기법은 플라즈마라고 하는 일종의 절단기법이다. 넓은 철판을 저며 내는 이 기법은 압축 공기를 이용하여 철판을 절단하는 방법인데, 궁극적으로 철판에 미세한 구멍을 만들어 낸다. 즉 철판의 표면에 수많은 스크래치를 가함으로써 마치 늙은 코끼리의 피부나 혹은 써래질을 끝낸 뒤의 논의 표면처럼 오톨도톨한 표면 질감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철판은 옷감으로 치면 일종의 원단과 같은 구실을 한다. 그는 이 철판을 재단하여 원하고자 하는 형태들을 만들어낸다. 쉽게 풀이하면 마치 망사 천을 이용하여 모기장을 만들 듯이, 독자적인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가 제작한 순수한 형태의 기하학적 구조물들은 가령 사각의 입방체를 비롯하여 일부가 구겨지거나 주름이 잡힌, 다소 변형된 입방체들이다. 이 변형된 구조물들은 거대한 고목의 둥치나 혹은 식물의 일부, 소담해 보이는 둥근 형태의 빵, 또는 쥐어짜서 펼쳐 놓은 수건을 연상시킨다.


  최태훈이 작품의 내부에 전구를 넣은 아이디어는 결과적으로 작품에 숨결을 불어넣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유의 미세한 구멍이 산재해 있는 철 구조물이 내부에 있는 전구로부터 발산된 빛에 의해 스스로의 몸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작품의 신체성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며 안에서 밖으로 확산되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얻게 된다.


  최태훈이 이번 전시에 기울이는 열정은 어느 때보다도 크다. 주 전시실 한편에는 피라미드를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거대한 기하학적 형태의 작품이 놓여있다. 가로 3.5미터에 세로 3.5미터, 높이 3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작품은 바닥에서 천정에 이르기까지 꽉 들어찬 느낌을 준다. 그 안에는 플라즈마 기법에 의해 만들어진 나무 형태의 작품들이 놓여 있어 거꾸로 설치된 피라미드 안에서 나오는 조명에 의해 실루엣이 밖으로 나타나도록 구성돼 있다. 피라미드 작품 역시 옆면이 플라즈마 기법에 의해 만들어져 마치 반투명 유리 막처럼 구조물 안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시간의 흔적’이라고 명명된 이번 출품작들은 모두 3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제1전시실에는 피라미드 형태의 거대한 구조물이, 그 옆에 있는 제2전시실에는 길이 7.5미터, 높이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 형태의 구조물이, 그리고 아래 층에 있는 제3전시실에는 길이 12미터에 달하는 벽면에 다양한 부조 형태의 나무들이 부착되거나 더러는 약간 앞으로 튀어나온 공간에 매달려 원근법적인 시각적 효과를 나타내도록 설치돼 있다.


  최태훈은 이 일련의 작품들을 통하여 시간과 생명에 관한 문제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의 이번 작품은 ‘인간, 자연, 우주를 주제로 생명의 근원’을 탐구해 온 기존 작품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지난해 김종영 미술관 초대전에서 보여주었던 작품들에 비해 훨씬 포괄적인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작년의 출품작들이 미니멀한 성격의 형식주의적 맥락에서의 추상조각에 치우쳐 있었던 반면, 이번 작품은 예의 피라미드 구조물을 비롯한 나무 형태의 작품을 통해 시간을 매개로 한 생명의 문제를 환기시키고 있다. 작가는 “훼손된 피라미드, 불에 타버린 고목 등 죽어버린 형상에 빛을 주어 생명을 부여하고 플라즈마 기법을 이용해 시간의 흔적을 해부한다. 물리적인 중력을 거스르며 거꾸로 세워진 피라미드와 그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나무를 통해 시간의 역전현상을, 겹겹이 쌓인 나무껍질과 내부로부터 스며 나오는 빛을 통해 시간의 껍질을 형상화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최태훈의 관심은 이제 ‘우주적 신목(神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대한 나무의 탐구에 두어진다. 대지적 영기(靈氣)가 감도는 신비의 숲, 그 태초의 싱싱한 비경을 암시하는 나무 형태의 구조물들은 전시장에 설치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의 작품은 신령스런 숲으로 대변되는 자연에 대한 하나의 유비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문명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자연에 대한 외경심의 환기를 위하여 그는 작품에 영성(靈性)을 부여한다. 그것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빛으로부터 온다. 빛이 새 나오는 나무, 그 인조의 신목으로부터 관객들은 어떤 영성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거대한 나무로부터 뿜어 나오는 광휘를 통하여 우주적 영성을 체험하는 것은 최태훈의 작품이 지닌 미덕임에 분명해 보인다. 이 경우에 조각가 최태훈은 단지 조각가로서의 신분을 넘어 인간과 대지, 그리고 우주를 연결하는 샤먼이 된다. 신의 대리자로서 이 샤먼의 존재는 현대사회 혹은 현대예술의 상황 속에서 점차 그 기능과 역할이 축소되어 존재 자체가 미미해 지고 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만큼 더 요구되는 것이 바로 영성의 매개자로서의 샤먼인 것이다. 최태훈은 빛을 발산시키는 조각적 행위를 통하여 철에 어떤 신령한 느낌을 부여하고자 한다. 관객이 그의 작품에서 단순히 형태미를 취하든, 아니면 어떤 우주적 영기를 느끼든 그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조각의 지평이 점차 넓혀지고 있다는 점이며,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작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