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철에 남긴 흔적 'Metal Marks'

재 료 : 철(결속선), 우레탄 투명 도장

 

철은 자연에서 태어났지만, 나무 물 흙 등 자연의 부드럽고도 따듯한 속살과 반대로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인간의 손을 거쳐 가공된 철은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며 현대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다. 이렇듯 철은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는 다양한 보철 소재에서부터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날카로운 철제 무기류로 변신하며 우리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전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작가는 철이라는 재료에 천착하여 오랜 시간 작업해오고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하여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이다. 바람과 우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현상 또는 인간사회의 사건 사고들, 인간 내면의 심리를 소재로 불러왔다. 이는 생명의 근원을 만들어내는 비가시적인 영역에 대한 탐구 결과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 작품들이 구상적인 형태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 전시 작품들은 추상성을 띠며 보다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작품의 주재료는 철근 소재를 묶어주는 얇은 철사로서 건설현장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철선이 작품 안에서 군집을 이뤄 새로운 생명력을 갖는다. 이전 작품들이 거대한 철 덩어리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면, 이번 작품들은 부산물의 조합으로 힘을 전혀 받지 못하는 철선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를 구현했다. 절규하듯 흩어지고 구부러진 철선들은 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처럼 연약하지만 강인하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큰 철 덩어리가 주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보다는 수많은 개체를 포용하는 따듯하고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자연과의 대립을 개념으로 시작한 작가의 금속 조형세계의 궁극적인 종착지는 결국 자연이었다. 인간 존재의 물음, 예술가치에 대한 물음은 조각도를 잡은 그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화두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고자 끊임없이 철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보여주기를 거듭하다 보니 질문의 무게는 가벼워졌지만 작가가 내 놓는 답의 깊이는 보는 이의 심저를 울릴 만큼 깊어졌다. 작가가 철에 남긴 흔적에는 녹록하지 않은 인간 삶의 무게와 존재적 가치가 오롯이 담겨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여전히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