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철'  - 최 태 훈

 

담배 연기가 새벽녘 안개처럼 자욱해질 즈음 하루가 비로소 끝난다. 새벽 커피가 잠들기 위한 수면제로 용도변경 된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 긴 세월 동안 작업실에서 함께 밤을 새우며 말동무가 되고, 영감의 원천이 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 때문에 작가의 길에 들어섰으니, 오늘의 ‘나’는 그 친구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자르고, 두드리고, 녹이고, 붙이고를 반복하며 거칠게 힘겨루기를 하다가도, 다시 쓰다듬고, 보듬어서 따뜻한 온기를 교환한다. 형체가 해체되고 다시 형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듭하며, 그 녀석의 속살을 조금은 파악했다고 오만하게 기지개를 켜려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그 뻑뻑한 뼈대를 드러낸다. 그렇게 24시간을 종일 씨름하지만 절대 타협을 모르는 고집스러운 녀석이다. 신기하게도 그 우직함이 싫지 않고, 그 대쪽 같은 성깔이 싫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디지털 시대, 정보화 시대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더니, 이제는 많은 사람이 “언제까지 그 우직한 녀석하고 함께 하려고 하는지” 핀잔을 준다. 그런데 나 역시 그 녀석을 떠날수 없다. 한여름 가로등 빛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처럼 그 녀석이 뿜어내는 빛과 소리는 나의 심장을 매일 밤 뛰게 만든다. 그 중독성은 20년을 사귀며 서로 싸우고 화해하며 동거를 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그런 쾌감이다.

 

내러티브가 형식을 좌우하고, 맥락이 콘텐츠를 해석하는 시대를 지켜 보면서, 나의 20년 지기 친구 녀석은 내 말을 듣지 않고 그 반대의 상황을 종종 연출하니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그 거친 성깔을 이겨내고 그 안에 내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해왔지만, 사람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해버린다. 그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또다시 그 녀석에게 져 버렸다는 패배의식이랄까? 여전히 나는 그 녀석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다. 아니 매번 소개하지만 항상 옳았던 적이 없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만큼 그 녀석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녀석에 대한 나의 우정은 또 다른 20년을 약속한다. 새벽 담배라도 끊어야 할까? 그 녀석의 기운을 감당하기에 오늘따라 힘에 부친다.

 

사람들은 나의 이 오랜 친구를 “철”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