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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의 주재료는 철근 소재를 묶어주는 얇은 철사로서 건설현장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철선이 작품 안에서 군집을 이뤄 새로운 생명력을 갖는다. 이전 작품들이 거대한 철 덩어리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면, 이번 작품들은 부산물의 조합으로 힘을 전혀 받지 못하는 철선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를 구현했다. 절규하듯 흩어지고 구부러진 철선들은 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처럼 연약하지만 강인하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큰 철 덩어리가 주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보다는 수많은 개체를 포용하는 따듯하고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자연과의 대립을 개념으로 시작한 작가의 금속 조형세계의 궁극적인 종착지는 결국 자연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어둠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빛의 축제, 장방형의 프레임 속으로부터 솟아나는 빛은 비상한 마력을 내뿜으며 우리를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인도한다. 빛에 현혹되어 다가가면 과도하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만큼 무수한 상처 자국을 지닌 철판이 융기와 거듭하는 가운데 굽이 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별의 표면을 옮겨 놓은 듯한 그 금속 피부는 마치 수많은 시간에 의해 형성된 행성의 거죽처럼 거칠지만 아름다운 질감을 지니고 있다. 그 속에서 산맥이 굽이 치고 평야와 구름 사이로 강이 흐르고 있다. 우주 공간의 한 단면을 필름과 같은 막으로 떼어놓으면 이런 형국으로 나타날까?

최태훈의 작품은 그 규모에 있어서나 제작방법의 난이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철을 재료로 삼아 용접으로 제작되는 그의 작품은 곧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투여됨으로써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그라인더로 철판을 갈 때 발생하는 날카로운 소음과 용접을 할 때 튀는 시뻘건 불꽃, 그리고 철판을 두드릴 때 나는 둔탁한 굉음이 어우러져 마치 거대한 철공소를 연상케 한다.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철판들과 드넓은 작업실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완성된 작품들은 조각가 최태훈의 숨결을 발산하고 있다.

기성의 사유와 감성은 언제나 새로운 실험에 의해 또 다른 가치로 전환하곤 한다. 최태훈은 사물을 바라보고 인지하는 데 있어 기성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개념을 갖게 해주는 감성 리더이다. 그는 관람객과 대상물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개입을 통해 조각이라는 상황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유도한다. 하여 하여 그는 견고한 물질적 존재인 조각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물질과 빛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든다. 이를 통해서 최태훈은 자기 작업의 목표를 조각 자체에 관한 반성적 성찰로 이어간다. 물질과 비물질, 볼륨과 빛, 안과 밖, 가득참과 비어있음 등의 요소들이 상호출동하면서 새로운 조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최태훈의 조각은 이중성의 사유와 감성을 획득한다.

경희 대학교 미대를 졸업한 조각가 최태훈이 조각전문 미술관인 김종영 미술관에서 수상하는 '오늘의 작가상'에 선정됐다. 선정 이유는 가벼운 조각이 주류를 이루는 이 시대에 최태훈은 철의 성질을 가장 잘 아는 작가이며 철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예술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김종영 미술관측은 밝혔다. 그는 요즘 조각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드물게 쇠를 쓴다. 거대한 쇠 판을 갈고 구멍을 내는 과정을 거쳐야 탄생하는 그의 작업과정은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한다. 엄청난 소음 때문이다. 만든 작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 큰 작품을 밖에 내 놨더니 비 맞고 녹슬기를 반복해 상태가 온전치 않게 됐던 것이다. 어쩌겠나 무너지는 가슴을 끌어안고 만든 작품을 고물상에 넘길 수 밖에..

그렇게 술잔 위로 꽃잎이 흩날렸으니, 그 누군들 취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곳에서 그는 운명처럼 구멍과 만났다. 아마도 바람이 불었으리라. 잎새가 바람을 따라 흔들렸을 것이고 그 사이로 황홀한 빛의 군무가 펼쳤을 것이다. 술에 취해 널브러져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는 살아있음의 고통과 희열 속에서 보았으리라. 구멍을, 새로운 출구를. 존재의 격렬한 부정으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듯, 다른 존재 다른 세계와의 강렬한 조응으로 새로이 태어나듯. 구멍을 바라본 그는 이미 그가 아니었고, 그 앞에 놓인 세계는 그가 바라보던 세계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최태훈은 다시 조각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재료를 자르고, 휘고, 이어 붙이고, 가는 식의 재료와의 직접적인 교감을 통한 물질성의 회복을 그 대답으로 내놓는다. 이는 단순한 물질성의 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료와 몸이 부닥치는 감각성이며, 이러한 감각을 매개로 해서 물질적인 세계와 주체가 만나는 존재성의 복원으로 이어진다. 단순한 이미지나 개념으로는 결코 대신할 수 없는 몸의 습성을 회복하는 것, 표현의 직접성을 회복하는 것에서 조각의 존재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최태훈의 중심 시선은 ‘존재의 고통’에서 ‘자연의 소소한 오브젝트’를 지나 ‘원대한 은하계’로 확장됐다. 작품의 사이즈 또한 엄청난 배율로 커지고 있다. 그의 다음 행보는 인간도 자연도 천체도 아닐 수 있고, 어쩌면 그 셋 모두를 포함할 수도 있다. 그가 상처와 고통의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 투사시키고 승화시키는가에 따라 스펙트럼의 분광(分光)은 얼마든지 다양하고 찬란해질 것이다. 조각가 최태훈, 불을 뿜는 저 황소가 어디로 내달릴지 우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황소 스스로도 모를 것이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지만,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든 어떤 소재와 주제를 다루든 간에 불을 뿜으며 자아를 투척하는 순간, 그곳은 별밭이 된다는 사실이다. 황소를 두려워하지만 황소의 출현을 다시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술관에 도착하자 때마침 학생들과 작가와의 대화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거대한 금속판 위에 어떻게 섬세하고 수많은 텍스처(구멍들)를 만들 수 있었는지, 빛의 효과를 내기 위한 작업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 등이 한창이었다. 작가는 지금까지 작업을 해오면서 ‘철’이라는 요소(motive)를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철과 함께해온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제는 철이라는 놈에 대해 좀 알 것 같다며, 그 놈들을 좀 부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스테인리스스틸’은 ‘철’보다 질기다고 한다. 이런 비철금속은 일반 산소절단기로 작업이 안되고 유일한 도구가 ‘플라즈마 기법(plasma torching technique)’이라고 한다.

Wall bestows space the functions of boundaries providing human beings with a faculty to perceive, design, and create new space. Choi Tae-Hoon’s fifth solo exhibition, "The wall Sculpture" is an extension of long discourses about the interrelation between wall and space. Although there have been numerous discussions on space, there are not many examples paying much attention to walls that structure it, Hereby, dividing walls into there: walls marking out space; walls connecting space, walls extending into walls, the exhibition presents a variety of grounds for our space perception. 

 철판덩어리를 일정한 면으로 잘라낸 후 프라즈마라는 도구를 사용해 오랜 시간 갈아대고 긁어서 생긴 흔적이 철의 피부, 표면에 독특한 질감과 형상을 떠올려준다. 작가는 그렇게 철판을 기묘한 이미지가 서식하는 장, 화면으로 만들어 놓았다. 견고한 철의 피부는 수많은 상처를 입고 너덜거리거나 혹은 자잘한 구멍을 만들어냈다. 난폭하고 무참하게 상처 입은 이 철의 앞면은 마치 견고한 갑각류의 등판이나 혹은 고목의 나뭇등걸 내지는 오래된 바위의 주름을 닮았다.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 상처와 주름들이 재미난 형상과 여러 흔적, 이미지를 부추겨 주고 있다. 공간 속에 부정할 수 없는 물질로 존재하는 조각이라기 보다는 평면추상화의 표면을 공들여 들여다보고 있는, 그런 시각적 체험을 맛보고 있다. 

  검게 타버린 육중한 철 덩어리들의 뿜어 내고 있는 온기가 아직 식지 않은 채 작업실 한 쪽에 스며들고 있다. 종잇장처럼 휘어져 버린 강철 덩어리와 그것을 관통하고 있는 수많은 작은 구멍들, 그리고 그 구멍 사이로 쉼 없이 스며 나오는 빛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생명 탄생과 변화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은 상상의 여지를 낳는다. 그리고 그 변화를 예측할 수 없을 때 상상의 폭은 시공간을 초월하게 된다. 현재, 미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다. 상상력은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는 또 다른 상상력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의 출발점이 우리 주변의 아주 작은 존재에서 시작되었을 대 이야기는 더 풍부해진다.

1. 오늘의 시점에서 조각가가 ‘조각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은 이미 고리타분한 질문이 되었다. 현대미술이 당대의 삶과 문화 조건을 탄력적으로 제기하고 감당해오면서도 그 질문의 절박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질문이 아직도 유효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결국은 구태의연한 우문이 되기 일쑤라는 사실일 것이다. 비트의 속도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러한 질문은 종종 우울과 피곤을 동반한다. 이번 전시에서 최태훈의 조각 작품은 결국 숨길 수 없는 현대미술의 우울하고 피곤한 현 주소위에 다시 한번 던지는 ‘조각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그 거친 성깔을 이겨내고 그 안에 내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해왔지만, 사람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해버린다. 그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또다시 그 녀석에게 져 버렸다는 패배의식이랄까? 여전히 나는 그 녀석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다. 아니 매번 소개하지만 항상 옳았던 적이 없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만큼 그 녀석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녀석에 대한 나의 우정은 또 다른 20년을 약속한다. 새벽 담배라도 끊어야 할까? 그 녀석의 기운을 감당하기에 오늘따라 힘에 부친다. 사람들은 나의 이 오랜 친구를 “철”이라고 부른다.

Taehoon Choi's art world is about these origin and energies. To find the answer of the origin, Choi regenerates the swirling energies of Genesis that engulfed the sea and the land in his cold steel. These flooding energies are mainly coming from Taehoon Choi's peculiar method called 'plasma technique'. This technique destroys the stereotype about iron and implants a seed of life in the chill metal. It is a seed that will give us a clue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origin, life, and nature.
 

불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불은 흥분이고, 불은 사랑이다. 때론 불은 세상에 대한 복수의 싸한 미소다. 최태훈이 불을 대할 땐 거침이 없다. 철과 불은 그 앞에서 온순한 양이 된다. 손길 가는 대로 불이 탄생하고 철이 만들어진다. 쓰다듬을수록 불은 작가와 하나가 된다. 불이 의미를 탄생시키는 순간이다. 불은 철을 통해 의미를 탄생시키고 정처없이 사라진다. 작가 최태훈이 이 소멸하는 불에 헤파이스토스의 테크닉에 김광석의 그 아픔까지 온전히 담는 날, 철은 영원을 성취하겠다. 그리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

When Choi Tae-Hoon faces fire, he has no reservation. In front of him, iron and fire become a meek sheep. As he touches, fire is born/comes into existence and iron is made. Fire becomes one with the artist as much as he strokes it. It is the moment that fire creates a meaning. Fire gives life to a meaning through iron and vanishes aimlessly. On the day that Choi Tae-Hoon completely integrates Hephaestus's techniques and even that pain of Kim Gwang-Seok's into that disappearing fire, iron will achieve eternity. And I hope it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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