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 최태훈 - 이대형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
 

 


아름다운 중독

  벌써 12년이 지났건만 그의 몸에서 베어져 나오는 잘익은 금속 타는 냄새는 아직도 가시질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하게 숙성되어 그만의 체취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조각가 최태훈. 그는 철에 중독된 작가이다. 그의 손과 발에 떨어져 생긴 수많은 용접 상처가 그가 걸어온 치열한 작업 현장을 말해 준다. 차가운 재료에 영감을 불어 넣어 제2의 창조자가 되고자 하는 예술가의 본능이 처음부터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무례였을까? 신을 기만하고 신의 권능에 도전하다 매일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 바위 덩어리를 산 정상에 올려 놓아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처럼, 최태훈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지독한 노동의 연속이며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다. 2년 전 경험한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생과 사를 오갔지만, 그는 다시 목발을 짚고 일어나 산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힘겨워 보이는 발걸음. 그러나 이미 자신의 운명에 중독된 그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처럼 그의 감각을 중독시켜 버린 차가운 철의 쾌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 보기 위해 그가 그토록 집착하며 ‘학대’해 온 금속 표면을 쓰다듬어 본다 .그리고 치열했던 작업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변화를 위한 상처

  검게 타버린 육중한 철 덩어리들의 뿜어 내고 있는 온기가 아직 식지 않은 채 작업실 한 쪽에 스며들고 있다. 종잇장처럼 휘어져 버린 강철 덩어리와 그것을 관통하고 있는 수많은 작은 구멍들, 그리고 그 구멍 사이로 쉼 없이 스며 나오는 빛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생명 탄생과 변화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은 상상의 여지를 낳는다. 그리고 그 변화를 예측할 수 없을 때 상상의 폭은 시공간을 초월하게 된다. 현재, 미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다. 상상력은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는 또 다른 상상력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의 출발점이 우리 주변의 아주 작은 존재에서 시작되었을 대 이야기는 더 풍부해진다.

  이처럼 작은 이야기를 금속 안에 새겨 넣기 위해 작가는 자기 자신을 산화시키고 재료를 ‘학대’한다. 단단한 껍질로 덮여 있는 두 개의 둥근 공이 깨지기 전에는 서로 섞이지 못하고 튕겨내기만 하는 사실을 오랜 세월동안 체득한 최태훈은 기꺼이 자신을 내 던져 재료를 절단하고 파괴하고 다시 붙여 버린다. 그래서 작가의 몸과 금속 덩어리는 어느덧 상처투성이가 된다. 그리곤 하나의 물성 위에 다른 물성이 교차되고, 공간적 소재에 시간의 흔적이 새겨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시각 경험을 이끌어 낸다. 표면의 울퉁불퉁한 굴곡과 그 표면에 흐르고 있는 촘촘한 빛의 결정들은 한 여름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서 올려다본 반짝이는 나뭇잎의 흔들거림을 연상시키며, 잘리고 깨어진 금속 표면은 수액을 분비하여 스스로를 치유하는 나무의 옹이처럼 더 단단하게 엉겨 붙는다. 새로운 생명 탄생을 위한 상처, 역시 최태훈의 상처는 힘이 세다.



에너지를 조각한다.

  공간 속에서 조각이 어떤 형상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의 문제는 지금껏 수많은 표현 방법과 양식을 만들어 냈다. 이집트 조각에서 미니멀리즘 조각까지, 사실적인 조각에서 오브제를 이용한 설치 미술에 이르기까지, 조각은 양식의 문제, 개념의 문제였다. 그런데 최태훈은 여기에 조각의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측면, 즉 에너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스타일로 정의되는 것을 거부한다. 나무와 쇠붙이를 결합시켜 인간과 현대 문명의 부조화 속의 실존 문제를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표현했던 초기의 작품에서 프라즈마 기법을 이용해 우주의 근원을 원, 사각형으로 환원시켜 놓았던 작품, 교통사고 후 작은 생명 현상에 주위를 기울이며 생명의 꿈틀거림을 섬세하게 묘사했던 시기,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 나오는 청량한 바람을 연상시키는 친환경적 숲 시리즈까지 그의 작업은 하나의 스타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 다양함을 하나로 묶어주며 최태훈 조각의 아이덴티티를 확인시켜 주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에너지’이다. 그것은 땅과 바다가 뒤집어지고 작은 생명들이 꿈틀거렸던 창세기의 재현이다. 이 같은 에너지는 그만의 독특한 ‘프라즈마 기법’에서 비롯된다. 쇠붙이를 녹이고 잘라 내고 다시 붙이고 색깔을 바꿔 버리는 ‘프라즈마 기법’은 강철에 대한 우리들의 선입관을 과감하게 절단하고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한 겹 한 겹 현대 문명의 상징인 철과 동을 녹이고 붙이고 두드리고 다시 잘라 낸다. 어느 순간 차갑기만 했던 금속이 따뜻하게 호흡하기 시작한다. 이미 최태훈은 연금술사다.



조각을 경험한다

  높이 2.5미터, 폭 1.7미터, 길이 4.8미터의 터널이 만들어졌다. 하도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그건 조각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그 구조물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 놓았다. 사방을 휘감아 버린 기막힌 현상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우주였다. 그 수를 알 수 없는 작은 구멍 사이로 세어 나오는 빛의 세례를 받으며 두 눈을 감았다. 그것은 예술을 감상하는 공간이 아닌 나 자신을 돌이켜 보는 반성의 공간이었다.


  최태훈의 신작 시리즈 중 일부분이다. 이제 관객도 머리가 아닌 몸의 리듬을 통해 그를 매혹시킨 철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예술이란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서 미를 뽐내는 가식이 아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의 연속이다. 문제는 그 사건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옆에서 관망하는 행인으로 머무를 것인가의 선택이다. 진정으로 조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 최태훈의 지독한 중독 증세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바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