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훈 작가초상>


별을 향해 불을 뿜는 저 황소
2006년 김종영 미술관 오늘의 작가전, ‘Galaxy'에 부쳐    

 

해 이 수 (소설가)
 

 




들어가며

조각가 최태훈을 알고 지낸지 9년이 되어간다.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것도 그저 이름만 알고 지낸 것이 아니라 한솥밥을 먹은 세월이 있으니 어떤 면에서 정이 유별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의 작업을 간섭하며 많이 괴롭혔고 그 와중에 의도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글에서 내 나름의 기준에 맞춰 그와 교유했던 시절을 연대기적 구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또한, 최태훈의 작가 의식과 작품 경향의 변화를 조심스레 언급해보고자 한다. 간추리자면, 소설가라는 이종 예술 장르의 종사자로서 한 조각가의 생활과 작업과정을 들여다 본 단상의 기록 정도가 될 것이다.


1. 뿔을 가는 황소 : 1998년에서 2000년 봄까지

1998년 내 나이 스물여섯, 대학을 졸업하던 해의 봄에 조각가 최태훈을 처음 만났다. 그는 서른넷으로 생애 첫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었다. 당시 그는 전반적으로 불안정하게 보였다. 어딘가 아픈 것 같았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 했으며 누군가를 늘 그리워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랑과 지독한 경제적 궁핍이 그의 주변을 늘 안개처럼 감싸고 있었다. 영화배우 러셀 크로우를 연상시키는 이 사내는 술자리에서 곧잘 호방하게 웃곤 했지만, 대부분은 눈썹 아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 시절을 돌이킬 때마다 떠오르는 상징적인 장면은 그의 방에서 보았던 한 장의 흑백사진이다. 대학시절의 최태훈은 머리를 박박 밀은 채 한쪽 다리는 접고 다른 쪽 다리는 쭉 편 상태로 앉아 있었다. 상당히 불균형적인 포즈였다. 그러나 ‘불균형이 주는 조화(the harmony of unbalance)’는 때로 균형에서 비롯된 지루함보다 얼마나 예술적인가. 이러한 최태훈의 불균형 및 불안 의식은 쇠와 나무를 접목한 초기 인체 조각에도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느 늦은 봄날의 술자리에서였다. 그는 술잔을 들면 꼭 이렇게 외쳤다.


“사랑은 깊게! 이상은 높게! 우정은 평등하게!”


그것도 혼자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복창을 강권했다. 구절이 끝날 때마다 술잔을 낮게 내렸다가, 높이 들었다가, 중간 쯤 내렸다 하면서 그 말을 따라해야 했으므로 매번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몇몇 동석자들이 불편한 기색을 보여도 그는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술에 몹시 취하자 그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꿈의 대화’를 비롯한 몇 곡의 포크송이었는데, 나는 속으로 매우 놀라고 말았다. 최태훈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은 안다. 때로는 그가 목소리가 아닌 가슴으로 노래한다는 사실을. 순간, 나는 최태훈의 내면에 감춰진 상처와 잠재된 에너지를 직감했다. 너무 억세게 스트로크를 하는 바람에 기타 줄이 끊어지고 검지 손톱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어떤 확신마저 갖게 되었다.
그 해 가을, 미술평론가 최태만이 명명한 <존재의 고통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라>는 첫 전시회 타이틀은 당시 최태훈의 의식세계를 명확히 묘파하고 있다. 이 문장을 달리 표현하면, 그는 사실 존재의 고통 안에서 억압받았다는 해석이 도출된다. 위에서 언급한 불안한 안개 상황과 내면의 상처가 상호 시너지를 일으켜 그를 곧잘 통증으로 몰고 갔음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때로 그는 몹시 성이 나서 자신의 뿔을 바위와 나무에 갈아대는 황소처럼 보였다. 누구라도 섣불리 건드리면 단 번에 받아버릴 태세였다. 그래서인지 최태훈은 자신의 에너지를 어느 방향으로 분출할지 몰라 주로 자아의 고통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초기작 ‘기다림’은 이를 가장 잘 대변하는 작품으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내면에 잠재된 불안한 욕망의 뿔을 다시 자아를 향해 겨누며 스스로의 상처를 매만지던 시기였다.


2. 쇠를 가는 황소 : 2000년 봄부터 2002년 겨울  

새 천년이 시작되던 해 봄, 내가 시드니로 유학을 떠나자 우리 사이에는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그렇게 이년 가까이 소식이 두절된 상태로 지내던 어느 날, 나는 한통의 국제 전화를 받았다. 그의 교통사고 소식과 근황을 지인들을 통해 간간히 전해 듣고만 있었는데, 통화가 이루어져 매우 반가웠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는 사고로 인해 두 다리를 거의 못 쓰게 됐다고 했다.  


“형, 괜찮아요?”


내가 걱정스레 묻자, 그는 국제전화임을 의식했는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어, 많이 괜찮아졌어!”


내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이젠 좀 많이 나았어요? 잘 걸어 다녀요?”


“어, 못 걸어! 완전히 병신 됐다, 야!”


그는 대답을 하고 껄껄 웃어댔지만, 상태를 직접 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가늠하기 힘들어서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2002년 12월, 근 삼년 만에 귀국했을 때, 나는 한 달간 이천에 체류했었다. 그리고 조각가 최태훈을 다시 만났다.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한 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몹시 추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사이 치렀다는 개인전 <철로 이루어진 식물성>의 작품을 보고 나는 새로운 변화에 주목하게 되었다. ‘나뭇잎’, ‘씨앗’, ‘금이 간 열매’ 등을 통해 변환된 창작 의식의 싹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날 나는 쇠와 불을 다루느라 거칠어진 그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형(不定形)의 에너지 상태로 연소되거나 증발하기 쉬운 한 개인의 상처가 지상의 의미 있는 생명체로 재탄생되는 작업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더욱이 이 생명체는 길가에서 흔히 볼법한 오브젝트를 뛰어넘어 우주의 질서를 한 몸에 집약시킨 상징체이지 않은가. ‘하나의 모래알에서 우주를 본다’ 고 노래하던 윌리엄 포크너의 진의(眞意)를 최태훈은 죽음의 문턱 언저리에서 깨달은 듯 보였다. 따라서 쇠에 베이고 불에 덴 그의 손은 그 순간 더없이 위대한 손이었다. 로댕이 그토록 숭고하게 여기던 ‘창조자의 손’이었다. 머릿속에서 불확실하게 들끓는 이미지와 관념을 현실의 형상으로 끄집어내는 예술의 통로이자 창작자의 몸이었다. 비록 별개의 장르를 걷고 있지만, 높고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기 위해 엄청난 노동력을 투여하는 최태훈의 모습이 그때만큼 존경스럽게 보인 적은 없었다. 삼년 만에 재회한 내게 그는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만이 그가 내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접대 방식이었다. 용접기에서 엄청난 고온의 불꽃이 튀자 쇠가 달구어지며 녹기 시작했다. 이전 같았으면 나는 그가 가난을 녹이고, 고독을 갈고, 노동의 피로를 끊어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가 갈고 끊어내는 것은 그런 울분 따위가 아니었다. 어느덧 최태훈은 자아의 고통에 치중하던 에너지를 씨앗이나 나뭇잎 등의 생명체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어쩌면 플라즈마의 명멸하는 불꽃 속에서 작가 최태훈은 훗날 이루어낼 오로라와 갤럭시를 미리 엿보았을 지도 모른다.

  
3. 별을 가는 황소 : 2003년부터 2006년 늦은 봄까지

2005년 8월 시드니에서 학위를 마치고 이천에 들렀을 때, 나는 2003년에 열린 최태훈의 개인전 <Iron Age Stories>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의 시선은 어느새 자연의 소소한 생명체에서 눈을 들어 천체(天體)를 지향하고 있었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이 시기는 과거에 완성한 <철로 이루어진 식물성>에서 미래에 펼쳐질 <GALAXY>로의 신중한 변환기가 아니었나 싶다. 즉, ‘식물의 결실’과 ‘우주의 발아’가 동시에 맺어지고 피어나던 창작의 전기(轉機) 지점으로 추측된다.
2006년 5월 12일 금요일, 김종영 미술관을 찾았다. 흐린 날씨였다. <GALAXY> 라는 타이틀 아래 ‘2006 오늘의 작가 Tae Hoon Choi’ 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미술관에 들어선 나는 곧바로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조촐한 연회장에 마련된 와인으로 목을 축이며 작품을 먼저 감상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다. 일본에서 유학 와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있는 이나바 마이 씨는 간단하게 박력이 넘친다고 했다. 최태훈의 작품을 전시하려면 이 정도의 스페이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그의 전시회를 따라다니는 팬이었다. 최태훈의 지인이자 조각가인 이영호는 에너지의 발산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러 잔의 와인을 비운 뒤에야 전시장으로 걸어갔다. 입구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것은 주로 극장에서 사용하는 차광 휘장이었다. 전시장 전체를 우주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작가는 부조의 평면적 한계를 탈피함과 동시에 입체감과 신비감을 최대화하기 위해 빛을 끌어들였다. 조각 설치 공간 자체마저 예술화한 셈이다. 실제로 나는, ‘갤럭시’를 한 바퀴 빙 돌며 감상하는 어느 관람객의 그림자가 너무 신비스러워 작품의 일부분인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번 <GALAXY>전은 <2003 Iron Age Stories>에서 보여줬던 기법과 의식을 한 단계 발전 심화시켰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작품 ‘갤럭시’는 이미 ‘nest’에서 그 조짐이 보였고 ‘은하수’ 는 03년 덕원 갤러리 리오프닝 당시 전시되었던 ‘part’의 확장인 셈이었다. ‘오로라’는 01년에서 02년 제작 전시된 ‘expansion’과 ‘shell’의 조형적 감각을 세련된 기법으로 극대화 시킨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나의 눈길을 끈 부분은 철의 표면에 무수히 형성된 상처와 봉합의 흔적이었다. 아니, 그 상처와 봉합의 자리마다 뿜어져 나오는 영롱한 빛줄기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무수한 구멍의 상흔’을 ‘빛나는 성좌(星座)와 성무(星霧)’로 치환시킨 작가의 웅혼한 해석에 나는 찬사를 보내고 또 보냈다. 작가 최태훈을 처음 만났던 시기에 그를 뒤덮었던 현실의 불안한 안개는 9년 사이에 산란하는 빛의 분무로 바뀌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녹을 깎아내고 껍질을 벗겨낸 철판 위에서 피어난 화려한 들꽃 무더기였다. 그는 이전에 자신을 침몰시키는데 사용했던 에너지의 항로를 어느덧 천체로 돌려 이제 별들을 노래하는 중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더 이상 내면의 뿔을 갈던, 쇠를 갈던 황소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천체(天體)를 무섭게 갈아엎는 고대 신화의 역사(力士)와 다름없었다.


나오며

이 글에서 나는 한 소설가의 관점으로 조각가 최태훈의 작품 경향과 작가 의식의 변화를 시간적 순서에 의해 살펴보았다. 종사하는 장르가 다르고 단상에 의존한 진술인데다가 비전문가의 졸견이라 어설프고 모자란 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비전문가의 소박한 시선이 때로는 전문가의 정형화된 고견보다 흥미로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요약하자면, 최태훈의 중심 시선은 ‘존재의 고통’에서 ‘자연의 소소한 오브젝트’를 지나 ‘원대한 은하계’로 확장됐다. 작품의 사이즈 또한 엄청난 배율로 커지고 있다. 그의 다음 행보는 인간도 자연도 천체도 아닐 수 있고, 어쩌면 그 셋 모두를 포함할 수도 있다. 그가 상처와 고통의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 투사시키고 승화시키는가에 따라 스펙트럼의 분광(分光)은 얼마든지 다양하고 찬란해질 것이다.
조각가 최태훈, 불을 뿜는 저 황소가 어디로 내달릴지 우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황소 스스로도 모를 것이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지만,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든 어떤 소재와 주제를 다루든 간에 불을 뿜으며 자아를 투척하는 순간, 그곳은 별밭이 된다는 사실이다. 황소를 두려워하지만 황소의 출현을 다시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