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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을 사유하는 최태훈의 빛조각 - 김준기 (미술평론가)

 

 

 


최태훈은 조각에 관한 상투적인 논리와 감성을 뒤흔들며 조각 고유의 가치들을 교란한다. 그는 견고한 물질세계로서의 조각, 다시 말해서 매스의 물성과 볼륨의 환영 사이를 오가는 조각 개념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시도한다. 그의 근작은 주거공간 안팎의 사물들, 그러니까 자동차와 소파, 욕실, 침실에 이르기까지의 사물들을 용접조각 작품으로 재현한 것이다. 그의 용접 조각들은 일상의 평범한 사물에 시각적 판타지를 부여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근작들은 금속 조각의 안과 밖에서 조명을 비춤으로써 조각의 물성을 교란한다. 최태훈 스타일 특유의 구멍 뚫린 철판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철판의 물질적 특성과 볼륨을 통해서 일루전을 생성하는 용접조각의 안정적인 기표체계를 넘어선다. 그는 여타의 사물들과 그 사물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매스와 볼륨, 바깥과 내부, 있음과 없음 등의 이원적 구조가 공존하는 변증법적 관계에 놓여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출품작들은 각각의 공간 특성에 맞게 입체와 빛의 만남을 이룬다. 비스듬한 사선으로 잘려나간 자동차 앞부분이 전시장 입구의 유리공간 안에서 도입부 역할을 한다. 실내의 첫 번째 공간은 소파와 테이블, 재떨이 담배, 자켓 등이 등장하는 거실이다. 거대한 선인장은 개방된 2층 공간까지 뻗어 올라간다. 두 번째 층은 욕실이다. 그곳에는 욕조와 거울과 세면대가 있다. 그는 이 사물들을 잘라냈다. 물론 잘려나간 공간은 정직한 수직, 수평선이 아니다. 비스듬하고 불안하게 잘라놓은 구획선이 안정성을 거부하는 작가의 감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세 번째 공간은 침실이다. 슬리퍼와 옷걸이 그리고 침대가 등장한다. 사선으로 잘려진 침대라는 물질과 금속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텔레비전 속의 영상, 그리고 외부와 내부의 조명이 교차하는 빛의 언어가 매우 감각적이면서도 묵직한 시각체험을 제공한다.

빛은 사물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근본 요소이다. 최태훈은 빛을 조작함으로써 사물의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뒤바꾼다. 그는 시각적 환영 이면의 물성과 빛의 존재를 성찰하도록 해준다. 그는 조각의 안팎 조명을 극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조각 작품에 대한 몰입의 강도를 높이다. 용접조각을 밝히는 외부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동시에 조각 내부에서 나오는 빛을 밝게 조정함으로써 외부의 조명을 받았을 때의 조각과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조각 사이의 극적인 대비효과를 살리는 것이다. 조각 작품 감상이라는 행위가 관람객 주체의 자의적인 동선에 따라 산만하게 유동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최태훈의 조명 조절 전략이 상대적으로 작품에 대한 몰입의 강도를 높여준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외부 조명을 줄이면서 내부 조명을 밝히는 방식의 조각 보여주기는 전통적인 의미의 조각언어로부터 이탈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그 조각언어의 본질을 매우 극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빛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물질이 아닌 이중적인 존재이다. 빛의 이중성은 때로는 입자로 존재하고 때로는 파동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빛의 특성에서 나온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을 통해서 최태훈이 보여주는 것은 이중성의 문제이다. 그는 빛을 끌어들여 조각의 겉모습에만 주목하는 시각적 획일성을 비판한다. 견고한 금속과 유동적인 빛, 물질과 비물질을 교차하는 그의 전략은 두 가지의 요소들이 공존하는 세상의 이치, 즉 이중성의 문제를 담고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조각 작품은 불변의 물질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매우 안정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키며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질이다. 조각이라는 물질의 견고한 안정성을 지탱하는 것은 볼륨이다. 풍부한 볼륨감을 가진 그의 조각들은 특히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에 흠집을 내고 그 조각들을 이어붙인 독특한 표면질감으로 인해 더욱 더 매력적인 방식으로 사물의 존재를 재현한다.

최태훈은 그동안 간간이 형상재현으로서의 조각을 보여주었지만, 이번 작업들처럼 구체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재현하지는 않았다. 근 몇 년간 그는 반추상이나 기하학적 추상의 방식으로 용접조각의 본질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작품이 담고 있는 일상 사물의 구체적인 형상들은 사뭇 이질적이다. 그의 조각은 우리에게 저기 선인장이 있고 침대가 있고, 그리고 소파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선인장과 침대와 소파를 본 딴 용접조각들을 바라보면서 각각의 사물들을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환영과 미술 사이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언어구사 방식이다. 최태훈의 조각도 충실하게 이런 단계를 거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단순히 사물의 형상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것을 넘어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한다.

변수는 그의 빛 전략에 있다. 그는 빛을 조작함으로써 안정적인 일루전 체계를 해체한다. 빛과 함께하는 최태훈의 조각은 두 가지 요소의 공존과 병행을 일깨워준다. 축 처진 옷주름의 일루전을 부각시키는 내부의 조명은 옷이라는 사물의 비어있음을 각인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옷은 신체와 결합했을 때의 옷과 그냥 옷걸이에 걸려있을 때의 옷은 천양지차로 다르다는 점을 일깨움으로써 이 작가가 왜 일상 속의 사물을 다시 들여다보는지를 잘 알려준다. 그는 금속을 용접하는 물질기반의 조각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그가 사용하는 빛 또한 하이테크 미디어 아트의 범주에 들지는 않는 것들이다. 그는 조각의 외부와 내부에 각각 조명을 설치하고 그것을 상호 교차하는 매우 간단한 메커니즘의 로우테크로 조각술의 상투적인 언어를 넘어선다.

그는 외부에서 조각의 표면을 비추는 조명을 줄이고 대신에 조각의 내부에서 그 바깥으로 빛을 내보냄으로써 안과 바깥의 논리를 뒤집어버린다. 조각의 내부에서 발산하는 빛은 견고한 볼륨을 해체한다. 빠르게 금속 표면을 지나가는 용접의 흔적으로 인해서 생긴 작은 구멍들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게 만드는 그의 조명술(照明術)로 인해 그의 조각술(彫刻術)은 일루전에 의존하는 재현미술의 단계를 넘어선다. 빛을 조각 작품 안으로 끌고 들어감으로써 그는 사물의 존재에 관한 우리의 믿음이 말 그대로 일루전에 의존하고 있음을 각성하게 한다. 조각을 비추는 외부 조명의 일방성을 내부 조명과 교차시킴으로써 그의 조각은 이중성으로 가득한 세계에 관한 은유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다시 말해서 최태훈은 금속과 빛의 관계를 끌어들은 은유적인 언어를 통해서 자연과 문명, 그리고 우리 삶 속에 베어있는 이중성을 말하고 있다.

기성의 사유와 감성은 언제나 새로운 실험에 의해 또 다른 가치로 전환하곤 한다. 최태훈은 사물을 바라보고 인지하는 데 있어 기성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개념을 갖게 해주는 감성 리더이다. 그는 관람객과 대상물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개입을 통해 조각이라는 상황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유도한다. 하여 하여 그는 견고한 물질적 존재인 조각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물질과 빛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든다. 이를 통해서 최태훈은 자기 작업의 목표를 조각 자체에 관한 반성적 성찰로 이어간다. 물질과 비물질, 볼륨과 빛, 안과 밖, 가득참과 비어있음 등의 요소들이 상호출동하면서 새로운 조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최태훈의 조각은 이중성의 사유와 감성을 획득한다. 요컨대 최태훈은 용접조각을 빛의 조각으로 확장하면서 조각(이라는 상황)을 조각함으로써 이중성의 사유를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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