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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조각으로 드라마를 쓰다. -  조각가 최태훈

 

어느 날인가부터 먼 산을 쳐다보게 된다.

어느 날인가부터 말이 없고 침묵하게 되고 숙연해진다.

어떤 시절,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뿔을 갈던 나는 온 데 간 데 없고,

이제는 귓전을 스치는 스산한 바람 한 조각에도 몸을 떨고 옷깃을 여미는

한 줌의 나만 공허하게 남아 있다.

깊어지는 침묵과 숙연함은 반복된 아픔과 외로움이 만들어낸 나의 모습이다.

 

산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물줄기가 거대한 폭포가 되고

거친 바다로 향하는 적대적인 이유가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저 나 자신이 의미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비저블 맨(Invisible Man)! 외로움의 실체이며 중심이 아닌 바깥이며,

차있는 것이 아닌 비워있는 존재, 이것은 나 자신이자 나의 분신(Alter-ego)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내 자신의 상태를 표현한 나의 이야기이다.

이번 전시의 구성은 1층에서 3층으로 이어진다.

1층 입구 쪽에 힘들게 비틀거리며 입구 쪽으로 향하는 사람이 있다.

후드티를 입은 이 사람은 보석과 액세서리로 만들어진 진열장을 지나가지만

그것들을 만질 수도, 돈으로 살 수도 없다.

그것들과 너무나 안 맞을 뿐이며 같이 동화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려한 그 곳을 힐끔 쳐다만 보면서 그는 끝내 자기 자신을 알아버린다.

 

그리고 안쪽 전시장

혼자 지탱하기도 힘든 육체가 2등분되어지고 열등감으로 가득 찬 고통으로부터

자존심의 상처를 받는다.

2층으로 올라온 그는 자연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 한다.

벽면에는 빔프로젝터로부터 투사된 바다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뻥 뚫린 바다 수평선 너머 시간의 역사를 말해주듯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며

상념에 잠긴다.

이 바다를 통해 그는 지금까지의 분노와 한과 슬픔을 치유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바다는 없다. 그것은 투영된 자연일 뿐이기 때문이므로…

그래서 공허하고 도피를 꿈꾸는 듯한 그의 시선 또한 공허할 수밖에 없다.

마침내 그는 너무나 강한 외로움을 느끼며 자신이 치유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는 작은 방으로 자리를 옮겨 본인의 이야기를 낙서하기 시작한다.

계속 써내려간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 낙서들을 지워나간다.

그는 어떠한 흔적도 남길 수가 없다.

그는 그럴 용기마저 가지고 있지 않다.

 

3층으로 올라간다.

너무나 상처받고 힘든 그는 도피하듯 모서리 벽면에 주저앉아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너무나 외롭고 보잘것없는 자기 자신을 느낀다. 그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린다.

이제 쉬고 싶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다.

그는 알몸이 된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버린다.

그는 힘든 몸을 이끌고 유일한 안식처로 향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지워버리기라도 하듯 이불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는 일어나지 않는다. 쉬고 있다. 모든 것을 지워버리듯 죽은 듯이 쉬고 있다.

 

보잘것없는 그런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라고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은 한 자락 꿈과 같은 것, 그것 때문에 더욱 고독해 진다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지.

 

Invisible Man은 단순히 헐리우드 액션영화에 나올 법한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함께 존재하고 있지만,

나의 소외와 고통을 들어주고 위로해줄 사람은 없다.

조각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를 통해 나는 나의 고독을 무심하게 한정짓는 타인의 무관심함을

고발하고 싶다.

 

눈에 보이지만 볼 수 없는 존재,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자신으로부터도 자존감을 상실당한 가련한 존재,

이 사내는 나이며, 또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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